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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프랑스 정가의 ‘막후 실세’ 여성, 90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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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TOY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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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프랑스 가로 前 유럽의회 의원 퐁피두, 시라크에 정치적 조력 제공 1981년에는 직접 대통령 도전하기도 197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통한 마리-프랑스 가로 전 유럽의회 의원이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4일(현지시간) 르피가로 등 프랑스 매체들에 따르면 가로 전 의원의 아들은 전날 “어머니가 22일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청소년기와 20대에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프랑스의 항복,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이후 프랑스 제4공화국의 붕괴 같은 격동을 겪으며 일찌감치 정치에 눈을 떴다. 변호사인 고인은 샤를 드골의 대통령 당선으로 제5공화국이 출범하자 드골이 이끄는 정당 공화국연합(RPR)에 가입했다. 1969년 드골이 물러난 뒤 RPR의 조르주 퐁피두 전 총리가 대통령에 올랐을 때 고인은 퐁피두의 정치적 조언자가 되었다. 다만 보좌관이나 비서관 등 정식 직책에 임명된 것은 아니고 은밀하게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했다. 1974년 퐁피두가 갑자기 사망한 이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고인은 지스카르보다 퐁피두의 후계자이자 드골주의 신봉자로 알려진 자크 시라크와 더 친했다. 시라크가 총리와 파리시장을 지내는 동안 시라크의 정치적 조언자로 일했다. 이처럼 1970년대 내내 막후에서 프랑스 정계를 좌지우지한 고인을 두고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란 말이 나돌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 지스카르, 전직 총리 시라크,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미테랑, 공산당 후보 조르주 마르셰 4인이 유력 주자였다. 고인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데 왜 출마를 강행하느냐’는 언론의 물음에 “소련의 압력에 대항해서 어떻게 프랑스의 자유를 지켜 나가느냐, 프랑스가 당면한 경제 위기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해서”라고 답했다. 열렬한 반공주의자였던 고인은 소련을 대하는 지스카르, 시라크 등 주요 후보들의 유연한 태도를 질타해 ‘잔다르크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대선 1차 투표에서 1.33%의 득표율에 그치며 전체 10명의 후보 중 9위로 탈락했다. 결선 투표에선 미테랑이 현직 대통령 데스탱을 꺾고 승리했다. 고인의 출마가 데스탱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사회당 집권 기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고인은 시라크가 대통령이던 1999년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다만 유럽연합(EU) 권한의 확대에 반대하며 프랑스 주권을 지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의정활동을 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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